■모유수유는 본능일까

국제인증수유상담가(International Board Certified Lactation Consultant, 이하 IBCLC)는 모유수유, 산전산후관리, 신생아 케어에 특화된 전문가 직능이다. “모유수유는 본능인데 무슨 전문가씩이나 필요한가?”라는 공격적인 반응을 접할 때가 있다. 이런 반응은 무지와 무관심에서 나온다. 인간의 출산과 수유는 공동체의 문화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홀로 아기를 낳고 홀로 모유수유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드문 일이다. 인간의 사회성이 진화하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공동 육아가 꼽히고 있다.

◇1981년 WHO 산하 세계보건총회에서 제정된 <모유대체품(분유)의 마케팅에 대한 국제 협약>. 이 협약을 이행하는 국내법을 제정해야 하지만, 무려 37년이 지난 2018년까지도 한국정부는 아직 만들지 않고 있다.

인간의 아기는 좁은 산도를 통과하기 위해 몸을 두 번 회전하여 엄마 등 쪽을 보며 나온다. 다른 영장류는 새끼가 어미 배 쪽을 보면서 태어나므로 어미가 새끼 머리를 잡아당겨 안아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출생 중인 인간 아기의 머리를 엄마가 잡아당긴다면 목이 과신전되어 꺾일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게 된다. 따라서 엄마의 등 쪽에서 아기를 잡아줄 수 있는 산파가 필요하다. 또한 1/3의 아기는 탯줄을 칭칭 감고 나오기 때문에 산파가 적절히 풀어 주어야 한다. 풀어 주기만 하면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산모가 직접 풀어주기는 어렵다.

역시 혼자 출산하는 것이 불가능한 고래류도 사회성이 발달했다. 아기고래가 태어나면 곧 숨을 쉴 수 있도록 수면 위로 밀어 올려 주어야 한다. 엄마고래 혼자서는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산파 역할 고래들이 도와주어야 한다. 수족관에서 혼자 출산하는 엄마고래에게는 이런 조력이 결여되어 있어 아기고래가 사망하기도 한다.

동물원에서 태어나 다른 친척의 모유수유 장면을 본 적 없는 고릴라 어미는 새끼에게 수유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수유 여성들이 동물원을 방문해 고릴라에게 수유 장면을 직접 보여주기도 한다. 인간보다 더 본능이 강한 고릴라에게도 문화적 전승이 없이는 수유가 불가능하다. 삶의 요소 대부분이 문화적 구성물인 인간은 당연히 더 교육과 실습이 필요하며, 공동체의 조력 또한 필수적이다. 어떤 자세로 아기를 안고 어떤 쿠션을 받쳐야 하는지, 유축기는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닦는지도 일일이 배워야 알 수 있다. 예컨대 산후풍을 진료할 때 반드시 수유 자세도 확인해야 한다. 엄마의 척추는 중립 자세여야 하고, 어깨와 머리가 앞으로 숙여지지 않아야 한다. 손목은 꺾이지 않고 권투선수처럼 일자 손목이어야 한다. 의자에 앉았을 때 발이 달랑거리지 않도록 발 받침대를 받쳐준다. 아기는 무게중심에서 최대한 가깝게 몸통에 붙여서 안아야 하며, 손의 힘으로 아기를 들지 않아야 한다.

■모유수유의 단절

문화적 전승이란 면에서 현대의 산모들은 큰 난관에 처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산파의 역할을 산부인과 의사가 대체하면서 출산(birth)은 분만(delivery)로 바뀌었고 의료적 개입이 급증했다. 이와 더불어 분유 회사(네슬레)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제3세계의 모유수유율이 감소하여 영아사망률이 증가했다. 감염이 많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는 분유수유아가 모유수유아보다 설사로 사망할 확률이 6배에서 25배 높고, 폐렴으로 사망할 확률이 4배 높다고 유니세프는 추정한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최소 80만 명의 영아가 모유수유를 하지 못해 사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80년대부터 모유가 미개한 것이라는 잘못된 편견은 퍼지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1980~90년대는 모유수유가 단절되다시피 했다. 2001년에는 6개월 완전모유수유 비율이 6.5%로 바닥을 찍었다. 현재 할머니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 여성들은 일부러 모유를 말리고 분유를 사다 먹였다. 모유 먹일 거라고 하면 의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모유 말리는 약인 팔로델을 처방하면서 가슴 동여매고 다니라고 가르치던 시대였다. 그 결과 모유수유 전통이 사실상 끊어졌다.

대가족이 해체되면서 이모, 고모, 사촌언니 등의 모유수유를 구경하면서 자라는 경험도 단절되었다. 원래는 엄마에게서 딸로 수유 방법이 전달되어야 하는데, 한 세대가 완전히 비어 버린 것이다. 현재의 많은 할머니들이 여전히 분유가 좋다는 편견을 가지고, 또는 딸의 건강을 해친다는 잘못된 걱정으로 딸의 모유수유를 지지하지 않고 있다. 모유수유의 지원 세력이 돼야 할 분들이 오히려 적대 세력이 된 셈이다. 또한 많은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에서는 관행적으로 분유를 제공하고 신생아와 산모를 분리하는 신생아실을 운영하여 모유수유를 시작부터 방해하고 있다.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를 보면, 한국 엄마들이 생후 1시간 이내에 수유하는 비율은 18.1%에 그치고, 생후 1주 동안 완전모유수유하는 비율은 23.9%, 모유+분유 65.9%, 분유만 먹이는 경우는 10.2%로 나타난다. 반면 퇴원 이후인 생후 2주부터 완전모유수유 비율은 50.1%로 갑자기 늘어난다. 분유수유를 조장하는 기관에서 나온 이후에야 모유수유를 비로소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수유여성들은 정보도 지지도 없이 외롭게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다.

■새로운 전통의 창출

한 사회의 모유수유 양상은 대체로 3단계로 진행된다. 상품화된 분유가 없는 저개발 상태에서는 모유수유 비율이 매우 높다가(1단계), 다국적 기업의 분유 마케팅이 진입해서 분유가 선진, 과학, 부유, 건강, 우량아 등의 이미지를 점유하여 모유수유 비율이 떨어진다(2단계). 이후 여성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모유수유 운동이 일어나고 수유를 지원하는 IBCLC 같은 전문가 그룹이 생기면서 고소득, 고학력 계층부터 다시 수유 비율이 올라가는(3단계) 모습을 보인다. 정치적인 노력이 뒷받침되기도 한다. 전 세계 영유아와 수유여성의 건강 문제가 위협받자, 1981년에 세계보건기구 산하 세계보건총회에서는 유니세프와 협력해 <모유대체품(분유)의 마케팅에 대한 국제 협약>을 체결하였다. (그림 참조)

모유수유는 한 사회의 공공보건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현재는 수유의 전통이 무너져내렸기 때문에 모유수유전문가들이 새롭게 전통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IBCLC 같은 전문가들이 비전문가 산모들에게 수유 방법을 교육하여 수유 여성들의 노하우가 쌓이고, 그들이 다시 자신의 딸들에게 전수한다면 수유의 전통이 다시 복원될 것이다. 이 가치 있는 일에 많은 한의사들이 참여했으면 한다.

김나희 /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